낙천적 성격의 지인이 우울증 비슷한 낯선 감정을 처음 느낀 건 세월호 침몰사고 때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한 당황스러움과 분노, 그리고 결국엔 자신(또는 사회)의 힘으로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그는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인은 5년 전과 비슷한 감정을 최근 다시 맞닥뜨렸다고 한다. 이른바 ‘조국 우울증’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드러난 위선적인 언행과 쏟아지는 의혹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강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한번 그는 당황스러움과 분노,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조국 정국’이 유발하고 있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편법과 위법이 동원된 의혹들이 한달 넘게 이어졌고, 사퇴와 지지 여론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둘로 쪼개졌다. 대학생들은 일제히 촛불을 들었다. 좌우 정치이념이 아니라 옳고 그름, 상식과 비상식을 말한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은 누구보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말고 뛰쳐나왔다고 했다.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지난 정권 촛불을 들었지만, 신뢰를 저버린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배신감과 허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청년들의 고통섞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교수들도 나섰다. 3년전 박근혜 하야 촉구 때(2234명)보다 많은 3396명의 전·현직 교수들이 조국 퇴진 시국선언에 서명했다. 민현식 서울대 교수는 “거짓말하고 변명하고 허위보고하는 건 공직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거짓말이 산처럼 쌓여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거짓말 위에 거짓말이 쌓이고 있다. “코링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5촌 조카는 펀드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 “딸의 고려대 진학 때 단국대 의학 논문을 제출하지 않았다.” 조 장관의 청문회 해명은 하나둘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투자처를 전혀 알 수가 없다던 사모펀드는 조국 일가가 깊숙이 관여한 가족펀드라는 정황이 짙어지고, 딸의 진학 과정에 제출한 각종 증명서들 역시 위조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의 86세대와 친문 지지자들의 반응은 국민을 더욱 아연케 한다. 유시민은 “조국 가족 인질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쏘려면 쏘라고 조국 임명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 쏴죽일 것이다”고 했다. 조국은 여전히 SNS를 통해 ‘공정사회’를 부르짖고 있다. 친문 핵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옳다는 확신과 신념이 있다면 무소의 뿔처럼 밀고 갈 수 있어야 한다”며 ‘원팀’ 정신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이끌자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일감정이 치솟을 때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배포한 그 연구원이다. 이들에겐 정권 유지가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큰 대의인가 의심스럽다. ‘검찰개혁’이라는 도그마에 갇혀 이 정도쯤은 괜찮다며 법과 정의를 외면할 셈인지도 묻고 싶다.
‘공정’과 ‘정의’의 가치는 이제 이 정부에선 유통기한 임박한 상품이 됐다. ‘촛불’의 전유도 끝났다. 정권을 창출한 히트상품들을 소생시키느냐 그대로 폐기하느냐는 문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 혼란스러운 조국을 지켜달라. 이 조국은 그 조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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