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증거로 범인 지목” 억울
‘8차사건’ 윤모씨 오늘 재심 청구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온 윤모씨가 13일 오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이주희 변호사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씨는 기자회견 후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오른쪽은 윤씨의 자필 입장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해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한 윤모(52) 씨가 13일 재심을 청구한 가운데 윤 씨를 수사한 같은 형사로부터 살인 사건 자백을 강요 받아 17년간 억울하게 수감 생활을 했다고 주장하는 50대가 등장했다. 그는 “당시 경찰이 참고인 조사를 한다며 45일 넘게 집과 공장에 상주하면서 생활 패턴, 삶의 궤적을 다 조사하고 증거를 짜깁기 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 12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경찰과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져 어렸을 때 상처받은 이야기도 다 털어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를 정황 증거에 다 이용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고문보다 더 무서운 수사”라고 말했다.
김모(59) 씨는 21년 전 발생한 ‘화성 여성 변사체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됐다. 이 사건은 1998년 9월 서울 구로구 스웨터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A(43) 씨가 화성군 동탄면 경부고속도로 부근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공장 운영자이던 김 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경찰은 김 씨의 자백에 따라 그가 A 씨에게 빌려준 돈 700여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불만을 갖고 있다가, 말다툼 중 홧김에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에 넘겨진 김 씨는 이듬해 4월 1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뒤 상소했고, 2심과 3심이 이를 모두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그가 가장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경찰이 물증을 확보한 과정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경찰은 사건 발생일인 9월 14일에서 약 3주가 지난 10월 초 피해자의 스웨터, 비닐봉지 등 증거품을 국과수에 보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살인사건의 증거는 현장에서 곧바로 회수해 국과수에 보내야하지만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며 “경찰은 나를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모든 정황 증거를 짜맞춰 범죄라고 만들고 난 뒤 국과수에 증거물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김 씨 범행을 입증할만한 혈흔 등 직접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김 씨가 신빙성 있는 진술을 했고 이를 보강할 수 있는 나머지 정황 증거에 의하면 김 씨를 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수사과정에서 사건 피해자의 혈액형이 바뀌는 등 석연찮은 부분도 지적했다. 김 씨는 “경찰은 처음에 피해자의 혈핵형이 O형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A형이라고 바꿨다”며 “홀로 재심을 준비하면서 ‘이상하다’하는 점이 많았지만 이를 어떻게 밝혀야 할지 너무나도 답답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이번 재심을 맡고 있는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김 씨는 화성 이춘재 윤 씨 재심 논란 전부터 재심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당시 수사과정에서 회유와 협박을 받았거나 증거 있어서 비과학적인 부분들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화성 연쇄살인 8차사건 범인으로 억울한 수감생활을 했다고 주장해온 윤 씨는 13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원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제출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에서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검거된 윤 씨는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으나,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이춘재(56)가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 사건과 다른 4건 등 14건의 살인을 자백하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진범 논란이 불거졌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