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4일 오전 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앞.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보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김민지 기자/jakmeen@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김민지·박상현 기자] “선배님 수능 잘 보십시오! 충성!”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4일 전국 86개 시험지구 1185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1년에 단 하루 뿐인 날인만큼 전국의 수험장은 수험생들의 건승을 응원하는 발길로 북적였다. 수능한파가 심했지만 학부모, 선생님, 후배 모두 중요한 관문을 앞둔 수험생들을 한마음으로 배웅했다.
이날 ‘수능한파’는 예년보다 심했다. 전날 내린 비로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데다 강풍까지 불었다. 수험생들의 입실이 시작된 오전 7시 기준 서울의 기온은 -2.1도, 체감온도는 -6.3도를 기록했다. 수험생 대부분은 패딩을 입고 추위에 단단히 대비하며 수험장에 나타났다. 선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후배들도 추위에 귀가 빨개진 채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이윽고 수험장에 선배들이 나타나자 학생들은 언제 추위에 떨었냐는 듯 환호성을 지르며 선배들을 응원했다. 힘찬 함성과 함께 북을 치던 장세욱(17·경복고) 군은 “선배들을 생각하면 하나도 춥지 않다”며 “형들 많이 긴장하실 거 같은데 저희의 응원이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청파동에 위치한 경복고등학교 수험장 앞은 응원 경쟁으로 뜨거웠다. 후배들은 빨개진 손으로 플래카드를 쥐고 연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쳐댔다. “명문고 환일의 수능은 대박나리라!” 시험을 앞둔 3학년 선배가 오자 학생들은 마주보며 대열을 정리했다. “중앙 학생 차렷! 중앙!” 후배들의 경례를 받은 수험생도 씩씩하게 “중앙!”이라고 답례한 뒤 수험장으로 들어갔다. 중앙고 학생회장 강두하(17) 군은 “수능을 맞아 학생회 전통인 경례를 모든 선배님들에게 하기로 했다”며 “형들 모두 찍은 거 다 맞고 잘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학교 야구잠바를 입고 응원을 준비했다는 우수환(17·동성고) 군은 “제가 2학년인데 내년 수능장에서 형들을 보지 않길 바란다”면서 “재수하지 말고 모두가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수험생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수험장으로 향했다. 굳은 표정의 수험생들은 부모님,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긴장감을 떨쳐냈다. 친구와 함께 온 정요환(18·용산고) 군은 “저 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 다 잘 봤으면 좋겠고 재수하는 형누나들 떨지 않고 마무리하면 좋겠다”며 “끝나고 빨리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말했다.
응원행렬 가장 앞에는 1년간 고생한 제자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이 간식을 들고 제자들을 기다렸다. 선생님들은 수험생들에게 준비한 간식과 핫팩을 쥐어주며 학생들을 안아줬다. 보성여교 교사 최미파 씨는 “안 떨 것 같고 굉장히 쿨하던 아이들도 수능 하루 이틀 전부터 너무 떨린다고 해서 마음이 안쓰러웠다”며 “실수하지 말고 담대하게 잘 보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응원이 부끄러운 듯 웃으면서도 “잘 보고 오겠다”며 선생님을 안심시켰다.
12년 간 고생한 자녀들을 수험장을 보낸 학부모들은 고사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한 학부모는 학교 울타리 너머 딸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쥐고 기도했다. 밝은 얼굴로 아이를 들여보낸 한 아빠도 아이가 들어가자 눈가를 훔치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고3 아들을 수험장에 들여보낸 박성연(53) 씨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박 씨는 “9월에 원서 접수하고 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지금까지 견뎌준 것만 해도 고맙다”면서 “아이가 ‘엄마나 나나 서로 오버하지 말고 평소 하던대로 하자’라고 말하는데 정말 대견했다”고 울먹였다.
오전 8시경 서울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앞. 입실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수험장 앞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응원하던 후배들은 한 선배가 안 왔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교통 경찰이 “친구나 선배 중에 안 온 사람이 있냐”고 묻자 학생들은 “작년 전교회장 언니가 안보였는데. 어떡해”라며 걱정했다. 곽지수(17·중경고) 양은 “언니가 늦는 것 같아서 걱정되는데 혹시 벌써 들어간 걸 수도 있을까봐 전화도 못해보겠다”며 “언니 진짜 경찰차 타고 와야해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8시 10분 정각이 돼 학교 수위가 정문을 잠그자 “안돼”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든 입실이 끝나자 수험장 앞은 차분해졌다. 학부모들은 정문 앞에서 기도를 했고 함께 응원했던 후배들과 선생님은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보성여고 학생회장 백재원(17)양은 “오늘 하루 언니를 전쟁터를 보내는 여동생 마음이었던 거 같다”며 “엄청 추운 날씨였는데 같이 응원해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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