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넉넉한데 112 호송 요청, 예약하는 학생도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선의가 계속되면서, 그걸 권리로 알더라.”
14일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능 지원 업무를 맡은 한 경찰이 기자에게 한 얘기다. 임박한 고사장 입실 제한 시간, 경찰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내린 수험생이 고사장을 향해 뛰어가는 수능 당일 익숙한 풍경을 기자에게 설명하면서다. 이 경찰은 “과거 경찰 한 두명이 선의로 수험생 이송을 한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수험생 이송이 경찰의 일이 됐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112신고를 해, 고사장까지 실어달라고 예약까지 하는 학생도 있다”는 믿지 못할 얘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고사장 인근 경비와 문제지 및 답안지 호송 등을 위해 총 9284명의 경찰이 동원됐다. 학교 인근 교통 통제를 하는 경찰까지 포함하면 투입되는 경찰 인력은 훨씬 늘어난다. 순찰차는 2247대, 순찰 오토바이는 469대가 지원됐다.
특히 경찰청은 지난 11일 듣기평가 시간에 들어온 소음신고와 함께 수험생들의 위급 이송신고를 긴급하게 처리하라는 지침을 각 지방청에 하달하기도 했다. 일부 지방청에서는 적극적인 수험생 지원을 약속하며 순찰차로 수험생을 이송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배포했다.
하지만 학생 수송 업무가 사실상 경찰의 업무가 되면서 내부에서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최근에는 수험생 이송 업무를 경찰이 맡지 말아야 된다는 글이 경찰 내부망에 올라오기도 했다. “수험생 호송 업무는 경찰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2000년 대 초까지 경찰의 업무였던 ‘우산 대여’ ‘동전교환’, ‘타이어 교체’등 ‘국민의 안전과 질서유지’와는 무관한 경찰의 이벤트성 업무와 비교를 하는 경찰도 있다. 물론 “수험생 이송이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측도 없지는 않다.
사실 수험생 이송은 '국가 경찰의 임무'를 규정한 경찰법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경찰법 3조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범죄피해자 보호’, ‘경비·요인경호 및 대간첩·대테러 작전 수행’,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의 단속과 위해의 방지’, ‘외국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와의 국제협력’, ‘그 밖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경찰의 임무로 규정하고 있다. 수험생 이송 업무는 경찰의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어떤 경찰은 “수험생 이송을 공공의 안녕으로 보자는 얘기인가”라며 꼬집었다.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지난 3년간의 시간을 수능시험 당일날을 위해 견뎌왔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출근 시간을 늦췄고, 듣기평가시간에는 비행기 마저 이착륙을 멈췄다. 건설현장에서도 이 시간 만큼은 공사를 자제했다. 온 나라가 수험생의 시험 무사 통과를 염원하고 기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12 순찰차를 택시처럼 예약하거나, 다른 교통 수단을 활용할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112호송 요청을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찰의 인력과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112 순찰차가, 혹은 순찰오토바이가 수험생을 나르는데 투입되는 동안, 지역 치안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자원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수험생 호송은 국가기관으로 대국민 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면서도 “많은 경찰 인력이 투입되면 치안 공백이 생길 우려가 분명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험생들에게 정말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112 신고는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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